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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원교근공책과 진나라의 패권전략, 설득력과 언변

by 언변가 2026. 6. 25.

양후가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함곡관을 굳게 닫은 채 진나라의 천하통일 행보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진나라에는 사자를 수행한 관원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일족을 엄벌에 처하는 규정이 있었으며, 기생충의 전파를 막기 위해 외국 사절이 타고 온 수레의 바퀴 등에 연기를 쏘여 예방키도 했다. 이는 진나라가 국경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외국 사절 및 그 행장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 검색을 시행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원교근공책과 진나라의 패권전략, 설득력과 언변
원교근공책과 진나라의 패권전략, 설득력과 언변

원교근공책과 진나라의 패권 전략

애초에 소양왕은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랐다. 모후인 선태후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위염이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훗날 지금의 하남성 등현인 양 땅에 봉해져 '양후'로 불렸다. 양후가 함곡관을 틀어막은 것은 정보 유출에 대한 진나라의 엄격한 규제를 악용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범수가 제시한 가장 뛰어난 계책은 이른바 원교근공 계책이다. 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치는 군사 외교 책략을 말한다. 이는 장의와 소진의 연횡책 및 합종책에 비유할 만한 것이다. 범수는 소양왕에게 이같이 건의했다.
"양후가 한과 위 두 나라를 건너뛰어 제나라의 강과 수 땅을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동원되는 병력이 적으면 제나라에 타격을 줄 수 없고, 많으면 진나라에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얼마 안 되는 병력을 동원하면서 한과 위 두 나라의 병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은 적절한 계책이 아닙니다. 지금 한과 위 두나라는 비록 동맹국이라고는 하나 서로 친하지 않은데, 그런 동맹국을 건너뛰어 다른 나라를 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전에 제나라 군신이 화목하지 못하고 백성이 피폐하자 제후들이 합세해 제나라로 쳐들어갔습니다. 결국 제나라 왕은 욕을 당하고 군사는 여지없이 무너져 천하인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제나라가 멀리 있는 초나라를 치면서 가까이 있는 한과 위 두나라의 국력을 비대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바로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식량을 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 원교근공의 계책을 쓰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것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것이 됩니다. 지금 이런 계책을 버리고 오히려 정반대로 원공근교를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하나라 위 두 나라는 중원에 위치해 가히 천하의 중추라고 이를 만합니다. 대왕이 패업을 이루고자 하면 먼저 중원의 이들 두 나라를 취해 천하의 중추로 삼은 뒤 초나라와 조나라를 제압해야 합니다. 조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우리 진나라에 가까이 다가올 것이고, 초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가 다가올 것입니다. 초나라나 조나라가 진나라에 다가오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진나라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두터운 예로 진나라를 섬기면 한과 위 두나라는 이내 무력해지고, 이내 천하의 중추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원교근공은 새로운 계책이었을까? 학계의 논쟁

현재 학계에서는 범수의 원교근공책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원교근공의 계책은 범수가 새롭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전국시대 초기 이래 진나라 외교의 기본 원칙이었다는 것이 반론의 요지이다. 양우가 한과 위 두나라를 가로질러 제나라의 강과 수 땅을 공략했을 때 이미 강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범수가 이를 언급한 것은 전통적인 원교근공의 외교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과연 이런 지적이 타당한 것일까? 설령 기존의 외교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당시 범수가 이를 소양왕에게 새삼 깨우쳐준 사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승상 양후가 막강한 위세를 부리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진나라의 대신들 중 과연 누가 이를 행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범수는 소양왕을 설득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것이다.

죽음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설득력과 언변

결국 양후는 쫓겨나고 범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뛰어난 언변 때문에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소양왕을 만나 원교근공책을 제시함으로써 최강대국인 진나라의 재상 자리에 오른 범수는 여러모로 장의의 복사판이다. 장의 역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진나라 혜문왕 앞에서 연횡책을 진언한 덕분에 재상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말년에 이르러 각각 위나라와 연나라 등 외국에서 여생을 보낸 것도 닮았다. "귀곡자"의 관점에서 보면 양자 모두 음양계의 대가에 해당한다. 이들이 보여준 다양한 유형의 음양계는 21세기 경제 전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협상 테이블에서 그대로 적용할 만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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